호랑이 시리즈(10) ‘세종배 수렵 대회’ 챔피언 수양대군 ..

칼럼 > 2022-08-14 11:12:31

‘세종배 강무 대회’라고 쓰고 ‘세종배 수렵 대회’라고 읽는다. 매번 대회에서 발군의 솜씨를 보인 사람은 ‘답정너’. 바로 수양대군이다. 수양의 사냥대회 입상 기록은 1429년(세종11)부터 보인다. 그때 수양은 만 12살이었다. 강원도 철원 평강에서 열린 강무대회에서 수양이 쏜 화살 7발이 모두 사슴 목을 관통했다. 이름하여 ‘견적필살(見敵必殺)’. 흔히 군대나 예비군 사격장에 많이 쓰여있는 글귀다.  


1432년(세종14) 6월에는 수양이 여러 왕실 친척들과 더불어 경복궁에서 ‘가족대항 활쏘기 시합’을 가졌다. 수양이 쏜 화살은 경회루 연못을 넘어 과녁에 백발백중했다. 옆에 있던 무장 양춘무가 감탄하면서 “국내 제일 명사수입니다”라고 치켜세웠다. 이미 만 15세에 조선 최고의 스나이퍼로 대성할 솜씨였다.


이해 9월 세종이 경기도 남양주(풍양)에서 강무를 열었다. 이날 수양은 날쌘 말을 타고 경사진 언덕을 달려 내려오다가 그만 말이 두어 길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말도 다치고, 안장은 모두 부숴 졌다. 그러나 수양이 누군가. 잽싸게 몸을 날려 말에서 빠져나와 언덕 위에 무사히 올라섰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탄복했다. 나이 16세에 이르러 수양은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뺨을 쳤다. 아무리 말에서 떨어져도 물파스조차 필요 없는 ‘금강불괴’가 된 것. 겨울철에 사냥을 갈 때도 가벼운 여름옷 차림이었다. 

 

▲ 마상재-말위에서 펼치는 각종 기술 


■ ‘원샷 원킬’. 스나이퍼 보다 뛰어난 수양대군의 활솜씨

1435년(세종17) 2월 강무 때는 수양이 화살 16발로 16마리의 사슴을 죽였다. 역시 ‘원샷 원킬’. 실록은 ‘화살 깃의 피가 바람에 뿌려 옷이 붉게 물들었다’고 적었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이다.  


늙은 무관인 이원기·김감 등이 이를 보고 “다시 태조를 뵙는 것 같습니다”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때까지 조선 최고의 보우 마스터는 단연코 태조 이성계였다. 이날 세종과 문종 또한 수양의 사냥 솜씨를 칭찬하면서 ‘엄지 척’을 한다. 나이 19세에 수양은 태조 이성계가 환생한 증손자가 됐다. 이성계에 버금가는 조선 최고수 보우 마스터 반열에 오른 것이다. 문약했던 문종은 왕세자 시절 몇 번 몰이꾼이 몰아준 노루를 쏘아 잡는 수준이었다.


1436년(세종18) 어느 날 수양은 “천하의 책을 다 읽지 않고서는 나는 다시 활을 잡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세종은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조선에서 유일하게 과거에도 합격하고 문무를 겸비했던 할아버지 태종의 ‘스펙’까지 따라 잡겠다는 것 아닌가. 세종은 수양에게 여러 문학 책과 자치통감 등을 전해 줬다. 또 갑자기 후원을 메워 농사도 짓는다고 하자, 농업 책까지 내려 줬다.


실록에는 1436년부터 3년간 수양의 사냥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1436년 수양의 절필 선언, 아니 ‘절렵’ 선언 이후 그동안 정말 활을 잡지 않았을까? (다음회 계속)



 ▲ 마상재-말위에서 펼치는 각종 기술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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