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리즈(17) 조선시대 극한직업 착호갑사 ..

칼럼 > 2023-01-23 18:29:00

호환(虎患)이란 호랑이로 인한 우환이라는 뜻.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철종때까지 조정에 보고된 호랑이 때문에 사망한 자는 3,989명에 달했다. 


■ 호랑이 때문에 문 닫은 조선시대 의정부 녹양 목장

1464년(세조10) 5월 26일, 매년 거듭해 조선시대 궁궐 소유인 의정부 녹양 목장에 호랑이가 침입했다. 


세조에게 두 번 실수는 없는 법. 세조는 직접 나가 호랑이 사냥에 성공하고 의기양양하게 환궁했다. 


그해 11월 19일, 녹양 목장에 계속 호랑이가 출현했다. 이번에는 세조가 직접 나가지 않았다. 바로 2주 전 강무에서 호랑이 사냥 중에 갑사 1명이 물려 죽었기 때문. 


세조를 대신해 사냥대를 이끌고 나간 형조 판서 김질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고, 의외로 호랑이 두 마리나 잡아 바쳤다. 


호랑이가 2년 동안 4번이나 출현하자, 조정에서는 녹양 목장을 폐쇄했다. 


이에 앞서 6월 18일에는 충남 논산군 연산면에서 사람을 해친 호랑이를 잡게 하고, 8월 28일에는 전국에 대대적으로 호랑이와 표범 소탕령을 발표했다. 


연말에 접어든 12월 1일 아차산에 나타난 호랑이는 장수 민발을 보내 잡게 했지만, 12월 6일에는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호랑이를 잡았다.


■ 호랑이 사냥 도중 죽은 착호 갑사의 아들은 공무원에 특채

호랑이 보고가 한참 뜸하던 1465년(세조11) 9월 14일, 세조는 창덕궁 후원에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었다. 


오랜 만에 심장이 뛰었다. 곧바로 대궐을 나가서 기어코 표범을 잡아 돌아왔다. 꿩 대신 닭, 아니 호랑이 대신 표범이었다. 그래도 손맛은 봤다. 


11월 18일에는 아차산 일대에 호랑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나섰는데 잡지 못했다. 


열흘 후 11월 28일, 은평구 갈현동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신하들은 세조가 나서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세조는 겨우 참었다. 그러나 이틀 후인 12월 1일 결국 그곳에서 호랑이를 잡았다. 이 날도 착호갑사 한 명이 호랑이에 물려 다쳤다.


해가 바뀌기 전 12월 22일, 이번에는 북악산에서 표범을 잡았다. 1466년(세조12) 1월 28일, 은평구 일대에서 호랑이 사냥 도중 착호갑사 박타내가 창을 잘못 찔러서 물려 죽었다. 세조는 그의 아들을 특채할 것을 지시했다. (계속) 

 


▲ 착호갑사 : 조선시대에 막중한 해를 끼치는 범을 잡기 위해 특별히 뽑은 군사. 범을 잡는 것을 실험 과목의 하나로 삼았으며, 활이나 창으로 두 마리를 잡으면 다른 시험을 보이지 않고 바로 뽑았다. 17세기 이후 조총을 사용했던 착호갑사들이지만 화승총은 명중률이 떨어져서 호랑이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 집채만 한 호랑이를 상대해야 했던 착호갑사는 까다로운 시험을 통해 선발됐다. 180보 밖에서 활 명중시키기, 두 손에 각각 30kg를 들고 100보 이상 걷기 등 힘든 테스트를 통과해야 할 수 있는 특수 직업이었다. 담력과 무예가 출중한 군인들로 주로 이루어졌으나, 사냥 중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 직업에 대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극한의 직업이 ‘착호갑사’가 아니었을까?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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