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만의 산삼? 약삼!] 7.인삼이란 말이 처음 나타난 때는 언제일까?

칼럼 > 2020-08-02 23:03:11

【임성만 약삼연구가

 


 

약초 중의 약초, 만병통치의 영약, 산삼은 죽는 사람도 고친다는 속설이 있다. 인삼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오랫동안 약재와 자양강장제로 이용해왔다. 그런데 인삼이란 말이 처음 나타난 때는 언제일까? 중국 전한(前漢), 33년(원제 건소 5년)때 사유(史游)가 지은 급취장(急就章)에 '삼(參)'이란 문자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후한(後漢, 196∼220년) 때 장중경이 저술한 상한론(傷寒論)에는 인삼을 배합한 21개의 약 처방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인삼을 약의 조제에 쓴 최초의 기록이다.

 

인삼이 약초로서 본격적으로 효능이 기록된 것은 서기 5세기경부터다. 중국 양나라 시대의 도홍경이 저술한 고전의학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본초몽전(本草蒙筌), 명의별록(名醫別錄) 등에서 나온다. 명의별록에는 '인삼(人蔘)·현삼(玄蔘)·단삼(丹蔘)·고삼(苦蔘)·사삼(沙蔘)을 오삼(五蔘)'을 분류했다.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약효가 인삼과 비슷하여 '蔘'자가 들어 있다고 보고, 5가지의 식물에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서 사삼(沙蔘)은 더덕이다. 더덕 역시 인삼에 비할 정도로 우리 몸에 이로운 식물로 평가돼 왔다. 또 이 책에는 백제 무령왕이 양 무제(武帝)에게 인삼을 예물로 보냈음이 기록되어 있다. "세 가지에 다섯 잎으로, 빛을 등지고 그늘을 향하며, 이를 구하고자 하면 자작나무 우거진 곳으로 가야 한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인삼의 모습과 생태적인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 1년에서 6년근 인삼. 

 

명나라 시대 이시진(1518∼1593년)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고려삼, 백제삼 등의 구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인삼이 재배된 것을 알 수 있다. 본초강목에는 삼국시대의 인삼에 관해 그 형태와 특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백제 인삼은 희고 가늘며 단단하고, 고구려 인삼은 뿌리가 굵지만 허하고 연하여 백제 인삼만 못하다"라고 했으며, 또한 중국에서 사용되던 인삼은 모두 한반도로부터 수입했다고 기록해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가 인삼의 주산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일본에는 쇼무(聖武) 천황 천평(天平) 11년인 739년에 신라에서 전해졌다. 인삼(人參)은 주로 고려 시대까지 쓴 말이다. 인삼(人蔘)은 조선시대 이후부터 표기된 것으로 생성 시기를 1392년으로 본다. 중국에서는 명나라까지는 인삼(人參)으로, 청나라부터는 우리와 같이 인삼(人蔘)으로 썼다.

 

인삼의 우리나라 고유 이름은 '심'이다.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편찬된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인삼의 향명(鄕名)은 '심'이라 기술되어 있다. 지금도 산삼을 채취하는 심마니들이 쓴다. 특히 해삼(海蔘)의 효능도 인삼에 버금간다.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를 들여다보면 해삼(海蔘)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해삼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해삼에도 인삼의 사포닌 성분이 있음이 밝혀졌다. 바다의 삼이란 뜻의 해삼(海蔘)으로 명명한 우리 선조들이 통찰력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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